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술라웨시 섬 (문단 편집) ===== 16세기: 고와의 대두 ===== 술라웨시 남부의 [[마카사르]]를 중심으로 거주하며 [[마카사르어]]를 사용하는 [[마카사르인]]들이 인도네시아 군도의 역사에 등장하는 것은 14세기경이다. 《나가라크르타가마》(1365)에 따르면, 마자파힛의 여러 봉신 가운데 하나로 마카사르 지역 왕국이 기록되어 있다. 마카사르의 초대 군주는 여왕 투마누룽(Tumanurung, Tomanurung)이었다고 하며, 투마누룽의 재위 시기는 1300년 전후, 또는 14세기 중반으로 추정된다. 투마누룽은 마카사르인들의 많은 민속 설화에 등장하는 군주이기도 하다. 앞서 언급한 17세기 마카사르어 연대기인 《고와 연대기》는 마카사르(또는 고와) 왕국의 성립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원래 마카사르 지역을 나누어 다스리던 지역 부족들의 연합체인 '아홉 깃발'(Bate Salapang)의 족장들이 새로운 군주(카라엥Karaeng)로 옹립하기 위해 외부에서 유력자 카라엥 바요(Karaeng Bayo, 남성)를 데려왔는데, 그 부인의 이름은 투마누룽이었다. 이때 카라엥 바요와 투마누룽에게 아홉 깃발이 충성을 맹세하는 대신 새로운 군주는 아홉 깃발이 전통적으로 누렸던 권리를 인정함으로써 마카사르, 혹은 고와라는 정치체가 성립하였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세계 여러 지역의 초기 역사가 그렇듯, 투마누룽이나 카라엥 바요라는 인물의 정체는 다소 불명확하다. 이들의 존재를 입증하는 비문 등 당대 사료가 있는 것은 아니며, 오늘날에는 후대에 작성된 지역 연대기와 설화에만 의존해 이들의 행적을 재구성해야 하기 때문이다. 고고학자 프랜시스 데이비드 벌벡(Francis David Bulbeck)은 투마누룽과 카라엥 바요의 이야기는 마카사르 지역의 전통적인 귀족 여성(투마누룽의 원형)과 당대 술루해와 남술라웨시 지역 무역에서 유력했던 외부 세력(해양 민족 [[사마 바자우]] 또는 그 원형이 유력 후보)의 남성 유력자(카라엥 바요의 원형)가 결혼하여 기존 마카사르 부족들을 통합하는 지배 가문을 새로 창시한 이야기가 기록된 것이었으리라 추정한다. 연대에 관해서는, 1300년 전후 고와 지역에서 강력한 지배자가 등장했을 것이라는 추정은 이때 지역에서 출토된 도자기가 갑자기 많아졌다는 사실과도 부합한다. 마카사르 지역의 여러 사료에 따르면 6대 군주 토나탕카 코피(Tonatangka Kopi)의 시대에 마카사르 왕국은 코피의 두 아들 바타라 고와(Batara Gowa)와 카라엥 세로(Karaeng Loe ri Sero)에 의해 둘로 쪼개져 고와 세력은 고와 왕국(Gowa), 세로 세력은 탈로 왕국(Tallo)이 되었다. 두 왕국은 긴 전쟁을 벌였는데, 종국에는 고와가 승리하고 고와 왕국의 투마파리시 칼로나(Tumaparisi Kallonna, 재위 1511–1546)[* 투마누룽 이래 9대, 고와 분리 이래 3대] 시대에 고와의 왕이 탈로의 왕을 겸하게 되었다. 이 연합왕국을 고와–탈로 왕국, 또는 단순히 고와 왕국이라 부른다. 고와 왕국의 수도는 숭구미나사(Sungguminasa)였는데, 투마파리시 칼로나 시대에 해안에 위치한 현재의 마카사르(도시) 지역이 교역 거점으로 개발되어 번성하기 시작하였다. 16세기 말 고와 왕국의 영향권은 [[인도네시아/역사#트르나테와 티도레|트르나테 술탄국]]의 영역에 속하는 동부 일부 지역과 북동부 [[미나하사 반도]], 남부의 부기스 삼각 동맹(이하 서술)을 제외한 술라웨시섬 전체에 이르렀으며, 보르네오섬 동부와 숨바와섬 동부에도 마카사르인의 식민지가 건설되었다. 남술라웨시 지역에서 이슬람의 역사는 늦어도 1320년대 사잇 자말루딘(Sayyid Jamaluddin al-Akbar al-Husaini)[* 이 사람의 손자 중에 인도네시아 이슬람 성인 [[9인의 왈리]](Wali Sanga)로 손꼽히는 이도 있다.]이 도래하여 이슬람을 포교함으로써 시작되었다. 16세기가 되면 이미 백성들 사이에서는 이슬람이 광범위하게 전파되어 있었으며, 1605년 9월 22일 마침내 고와의 14대(투마누룽 이래; 재위 1591–1629) 왕이 이슬람으로 개종하고 술탄 알라우딘(Sultan Alauddin)이 되었다. {{{#!wiki style="float:center;text-align:center" [[파일:1280px-South_Sulawesi_circa_1600.svg.png|width=400]][br]1590년 전후 남술라웨시 세력 지도.[br]서부와 남부는 고와의 영역,[br]동부는 부기스 삼각 동맹(보네, 와조, 소펭),[br]북부의 루우(부기스계)는 고와의 동맹(세력권),[br]완충 지대 아자타파릉은 삼각 동맹의 우방.}}} 비록 고와는 16세기 후반부터 17세기 중반까지 남술라웨시, 나아가 아마도 술라웨시 전체에서 가장 유력한 패권적인 해양 세력이었지만, 남술라웨시의 다른 주요 민족 [[부기스인]]의 왕국들은 독립성을 유지하고 고와의 패권에 저항했다. 이러한 부기스인 국가로 주요했던 것은 남술라웨시 동남부의 보네(Bone, Boné) 왕국(나중에 술탄위를 칭하여 보네 술탄국이 됨. 1330–1951)[* 14세기에 등장하였으나 본격적으로 강성해지고 술탄위를 칭하기 시작한 것은 17세기부터이다. 아체 술탄국처럼 종종 여성 군주가 등장하였는데, 역사에 기록된 군주 총 32명 중 6명이 여성이었다. 공식적으로 '[[술타나]]'라고 칭한 것은 그 가운데 세 명이다.]과 와조(Wajo, Wajo', Wajoq) 왕국(Kerajaan Wajo, 15세기–1957)을 들 수 있다. 이들 부기스 국가들도 지역을 어느 정도 통합해 등장한 것으로, 예를 들면 중부 동해안의 와조 왕국은 그보다 위에 있었던 다른 부기스 국가 루우(Luwu)와 이어진 15세기부터의 주도권 경쟁에서 승리하였으며 16세기 전반에는 루우를 봉신국으로 삼기도 했다. 그 외에 남술라웨시 중부 지역에는 서술라웨시의 만다르(Mandar)인 지역 및 북부 산간 지대([[토라자인]]들의 영역)와의 점이 지대에 소국 연맹체 아자타파릉(Ajatappareng)[* 적어도 일부는 부기스계인 5개 소왕국들(시덴릉Sidénreng, 수파Suppa, 라팡Rappang, 사위토Sawitto, 알리타Alitta)의 느슨한 연합체였다.]이 있어 완충 지대를 구성하며 주변 유력 세력과 경우에 따라 연합하였다. 고와가 아직 충분히 강성해지기 전인 16세기 초에는 잠시 대두한 와조 및 봉신국 루우의 연합에 맞서 고와 및 보네가 연합하였지만, 16세기 중반 와조가 고와의 영향권하로 떨어지면서 고와와 보네가 대립하게 되었다. 보네도 한때 루우를 굴복시키기는 했지만 16세기 중반 역외 서술라웨시, 중부술라웨시, 심지어 미나하사 반도 서부 등까지 진출하기 시작한 고와의 과성장은 남술라웨시 역내 세력 균형을 무너뜨릴 것처럼 보였고, 점차 강해지는 마카사르계 고와 세력에 대항하여 동남부의 부기스계 3국 보네, 와조, 소펭은 1582년 보네가 주도한 티무룽(Timurung) 협정으로 부기스 삼각 동맹(Tellumpoccoé)을 결성하고 고와에 맞섰다. 이때 동맹의 수장국은 보네였고, 제2서열이 와조, 말석이 소펭이었다. 부기스 삼각 동맹은 고와의 1582년 와조 원정 및 1585년과 1588년의 보네 원정을 공동으로 물리치는 성과를 거두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